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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방송환경과 진로
  2008년03월19일 07:11
     
 



                                 한국의 방송환경과 진로

                                                                                          최 동욱

정권이 바뀔때 마다 어용 언론학자들은 하나 같이 ‘방송위상’ 이론만을 들고 앞장 서 왔다.
이들은 한결같이 위정자의 권력 도구화의 구실을 찾기 위해서는 현실성과 객관성 없는 특정 나라의 케이스를 억지로 들이대며 꿰맞추기에 열들을 올려 왔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방송, 문제는 위상과 사람의 안배에 있지 않고 내면적인 체질개선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것이다.  

한국의 방송환경은 전근대적 낡은 방송의식과 시대에 뒤 떨어진 폐습의 관행을 반복하고 있다.  그릇된 선임 방송인들에게서 어설피 전수된 답습으로 일관되어 오고 있음이 자명하다.

한국 방송은 거듭나야 한다.
이것은 바로 자질있는 방송인의 확립 확보가 선행되어야 하고, 방송 포맷의 혁신으로 시대에 앞서 가는 감각과 실천으로 방송이 갖는 기능과 사명을 성실하게 실천하는 것만으로 가능할 것이다.

이것만이 새 시대의 새로운 방송의 혁신이 이룩될 수 있는 바로미터임을 확신한다.  
방송사의 개편과 정치적 색채가 뚜렷한 요인을 안배하는 구태의 폐습은 이제 멈춰져야만 한다.
방송 내면 깊숙이 파고든 병폐와 고루한 방송특권적 사고에서 과감하게 탈피해야만 한다.

구태를 탈곡하지 않고 서는 아무리 새 사람으로 바꾸고, 방송정책을 새롭게 바꾸고 꾸며도 결과적으로는 폐습의 굴레를 바꾸는 결과 밖에는 아무런 효험이 없을 것임을 우리는 체험해 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송운영의 주체는 지극히 전문성과 사명감이 투철한 양식적인 방송인을 찾아 봐야 할 것이다 .
이를 위해서는 물리적 연륜을 타파하고 혜안과 경륜의 진정한 능력과 인격을 갖춘 존경받는 방송전문인을 새삼스레 발굴해야만 하는 넓은 안목과 포용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하겠다.

잘 알고 있듯이 역대 주요 공영방송의 책임인물은 정치적인 배려에 의한 인물로 일관 되어 왔다. 방송의 전문성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이들을 위정자들의 방파막이로 삼아 왔던 관행을 우리는 오랜 동안 지켜 보아오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재임 기간동안 방송발전에는 안목이 없고 정치적인 도구화의 주구 노릇으로 일관된 관행들을 부인할 위인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한국 방송이 내면적으로 체질을 개선하려면 다음과 같은 원칙적인 개혁이 선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첫째 방송 구조의 혁신이다.

한국의 방송은 비 방송인력이 포진한 가운데 비 전문성 방송인력을 대거 투입 동원하고 그로 빚어진 비 방송적 내용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역기능적인 미디오로 변질되어 가기 시작한지 오래다.
그 결과는 방송인력의 대량화를 불렀고, 방송 내용의 저급화를 유도하여 유치 일변도로 치닫고 말았다.
요즘 한국 방송을 단적으로 표현해 보면
“방송을 할 수 없는 무자격 방송인에 의한,
방송에서 해서는 안 될 내용들로 메운 방송 아닌 방송이
전문적 안목이나 방송사명감이 없는 비 방송인의 일터 (자리)로 변질되었다” 라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방송의 구조 (Operation)부터 혁신이 이뤄지지 않으면 안될것이다.
방송 실무의 핵심을 일반적으로 편성, 제작 부서에 두고 있는 현실은 어느 매체에서나 공통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편성부서는 실무와는 거리를 둔 기획 작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작부서는 실제 방송제작 작업의 분업화를 촉진하는 비 효율적인 섹션화 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들 두 부서는 결과적으로 일력 소모와 작업의 중복,  나아가 예산 낭비의 요인이 되고 있음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
구미의 방송 구조에서 편성부서란 없다.
또 프러듀서 라는 직종도 없다.
우리가 은연중에 일본의 방송계가 그들의 체취에 맞게 편제한 구조와 인력 관리를 표방하여 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둘째 방송 전문인력의 복귀

요즘, 한국의 방송계를 빗대어 “어른이 없고, 권위자가 없고, 알맹이가 없다”는 말이 일반적인 인식으로 팽대해 있다.
방송 지도자가 없고, 방송전문인 없고, 듣고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현실을 그대로 적중한 표현으로 여겨진다.
그만큼 한국방송계의 현실이 인적 양산으로 누적 인력 소모시장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혜안적 전문방송인력은 배제된 반면, 직업안정을 위한 선택된 직장으로서의 방송회사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 강하다는 평가가 여기저기서 거침이 없이 나돌고 있다.
한국방송의 현장이 어찌하다 이지경이 되었는가 개탄하는 뜻있고 덕망 높은 전문방송인들은 길과 깊은 한숨을 멈추지를 않는다.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응급처방은 있다.
그 비결은 빗나간 방송계와 결별해야만 했거나, 특정 연령계층의 억지 형성을 위해 소외시켰거나, 타의에 의해 방송계에서 멀어저야만 했던 유능한 인재를 되 찾아내는 것이다.
이들의 관록과 경륜을 보물로 받아 들이는 되불러 들이는 용단이 무엇보다 급선무 일것이다.

그렇다. 한국 방송이 거듭나고 발전을 하려면 높은 경륜과 방송철학이 뚜렷한 원로를 찾아 나서야 한다.
무릇 방송은 신선감있는 인력을 필요로 하기 보다는 완전한 훈련으로 다듬어지고, 경험으로 이룩된 방송전문 인력으로 꾸며저야만 하는 프로페셔널 집단이어야 하는 원칙을 벗어 날 수 없는 특성을 되찾아야만 할 것이다.


셋째 한국방송의 3대 특징의 재검토

한국 방송의 구조 가운데 몇가지 기형적 관행이 있다 .
봄 가을만 되면 프로그램을 뜯어 고치거나 없애거나 새로 만드는 등의 이른바 봄, 가을 개편이라는 연례적 시행관습이 있다.
도대체 춘추 개편은 어디서 배운 폐습인가. 그리고 시, 청취자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가.
구미의 방송 선진국에서는 춘추 개편이란 것을 찾아 보기 힘들다. 다만 드라마나 특집 일 경우 시즌 별로 (계절이 아닌 특정 기간을 뜻함) 일정 길이의 시리즈는 있다.
그러나 일상적인 프로그램에서 프로그램의 개폐를 위한 춘추 정기적인 개편행사는 없다.

한국 방송계에는 프로듀서 라는 직종이 도입된 것은 1950년대 중반 부터다.
그러나 프로듀서 (Producer)라는 것은 특정한 작품이나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납품하는 일종의 투자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의 방송사에서는 임직원으로 고용하는 직원이 프로듀서로 불리우고 있다.
한국 방송에서 특정 프로그램을 맡아 제작하여 방송 송출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프로듀서’는 ‘프러덕션 맨’이라 해야 맞다.
프러덕션 맨 들을 관리하는 소집단 책임자는 프러덕션 디렉터라 한다. 방송조직의 규모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프로덕션 디렉터, 뉴스 디렉서, 뮤직 디렉터, 트래픽 디렉서 등을 총괄하는 직책을 ‘프로그램 디렉터’라 표현하고 있다.
구미의 방송회사 구조에서 이른바 ‘프로듀서’라는 직책은 없음을 알 수 있다.
방송계에서 ‘프로듀서’라 하면 외주 방송프로그램 제작자를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봄 가을의 정기적 프로그램 개편의 요식 행사는 특정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이른바 프로듀서 들의 전횡적 도구화가 되어버린 폐단을 우리는 오랫동안 지켜보아오고 있다.

이런 부패한 관행을 과감하게 탈곡 하지 않으면 안된다 .
“실력은 인정하지만, 그 사람 성격 때문에 ....
관록은 있지만 신진들의 진로를 위해서 그만 양보하시지 ...”
그 결과 오늘의 비방송적 내용이 보편화 했고, 비방송적 인물들이 대거 동원되어 오디언스는 안중에 없고 저들끼리 낄낄대는 말장난과 유치스런 몸짓과 말씨로 일관된 방송현실을 낳지 않았는가 말이다.

방송이 어디 아마추어의 말장난의 연습장이던가?
방송이 어디 어른들의 어린이 흉내내기 무대였던가?

오늘날 한국의 방송이 “눈뜨고 보지 못하겠고, 귀를 귀울여 들을 수 없다”는 현실적 결과가 바로 이런 원인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중요한 요건은 이런 조직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방송현업자들을 교육하고 양성해낸 유수한 대학의 신문방송학과 학자들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런 사회적 기현상을 야기하게 되었는가 하는 책임론도 대두될 법 하지 않겠는가.

이런 현상은 모두 한국의 방송이 퍼서내리티의 도입이 없이 어정쩡한 프로듀서 중심 시스템으로 별질된 구조의 모순에서 기인된다고 본다면 이의 혁신적 안목도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다.
  

넷째 기재는 최고급, 컨텐츠는 최저급

한국 방송계의 구조 가운데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현상은 방송 기재는 최신, 최고급 기기를 장비로
쓰고 있으면서도 정작 오디언스에게 서비스하는 프로그램은 보잘것 없고 소모적이고 낭비적인 내용만으로 일관된 커다란 모순을 안고 있다 .

어느 방송사를 가 보아도 방송 기재는 놀라울 정도로 최신 고가 모델을 즐비하게 진열하듯 보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그런데 문제는 이 최신 최고 네임 브랜드의 고가 방송장비들이 실제로 현업에서 어느 비중만큼 활용이 되고 있는 가를 알면 아마도 깜작 놀랄 것이다.
방송사 마다 그 정도는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거의 절반 정도는 유휴 장비라는 것이 방송기술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문제는 방송의 최고급 기재와 장비는 누구나 투자를 하면 가질 수 있고 시설할 수 있다 .
그러나 컨텐츠에서 무엇을 누가 어떻게 진행하느냐 하는 방송 노우하우는 투자로만 이뤄 질 수 없는 전문인력 소유자만의 보물과 같은 요건이 된다.  

방송사에 오랫동안 몸담아 왔고, 특정한 프로그램을 여러 해 동안 진행해 오고 있다고 해서 이를 방송전문이라고 묶어 주기에는 위험한 요소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객관적인 안목과 방송철학에 적합한 지적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열정과 능력을 겸비해야만 진정한 방송전문인이라 할 것이다.

한국의 방송은 이제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알찬 내용을 수용해야만 한다.  대기 시,청취자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준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될것이다. 그리고 방송을 멀리 해야만 했던 진정한 오디언스를 되 불러 들이는 방송 르네쌍스가 팰요한 시기라는 생각이다.

한국의 방송 미디어가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소수 정예의 에센스 미디어로 새롭게 태어나거나 거듭나는 길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로벌 감각을 갖고 앞선 창의적 스테이션 포맷을 설정하고 알찬 프로그램을 산출할 수 있는 능력있는 퍼서내리티의 개발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여기서 퍼서내리티 란 방송에서 특정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권위자를 뜻하지만 방송에서의 모든 프로그램을 소화 할 수 있는 전천후 방송인을 뜻하는 의미가 더 강한 방송전문인을 말한다.

한국 방송계에서의 선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요건은
보다 많은 자료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부단한 새 지식과,
방송 경륜에서 훌륭히 지킨 노우 하우를 제대로 활용하면서,
모든 계층에 애정을 갖는 성실한 품성을 지니고 인격을 갖춘 전문인 집단이어야 할 것이다.

무릇 새 시대에서 앞선 미디어로 자리를 굳히려면 기존 방송매체의 포맷과 프로그램들을 경쟁대상으로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독자적이고 개성 강한 미디어 포맷을 뚜렷하게 갖는 매체만이 앞선 승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 라디오 서울코리아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