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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준어가 사라지는 혼돈기인가
  2006년02월04일 19:12
     
 


* [주] 이 “최동욱 칼럼”은 필자가 미국에 머물러 있던 시절 (1991-2003) 가운데 1998년부터 2002년사이에 로스 앤젤러스에서발행되고 있는 시사뉴스 주간신문인 “코리아나 뉴스”의 주필로 있으면서 매주 게재하던 고정 칼럼의 일부입니다.

December 14, 1998

             표준어가 사라지는 혼돈기인가  

요즘 한국에서 학생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듣다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듣지를 못하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심지어 국어교사들까지도 학생들의 야릇한 언어홍수를 막을 길 없다며 두 손들을 드는 모양이니 얼마나 심각한 현실인가를 실감케 한다.
학생들의 언어특징을 보면, 말의 표현속도가 빠르고, 말에 두서가 없고, 말의 전달에 또렷함이 없이 얼버무리며 횡설수설한다. 여기다 지방마다의 독특한 사투리의 특성도 무너져 억양과 장단이 온통 두루 뭉실 이다.
더욱이 그 말의 진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의 분명한 전달을 기피하고 돌려대거나 핵심없는 말을 건성으로 주고받는다. 그래도 의사소통이 되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1988.1.19. 문교부 고시 88-2호에 의한 표준어 규정이 무용화되어 버린 느낌이다.
교사들 입에서도 “이제 표준어가 없어진 세상”이라는 말이 거침없이 나온다니 말이다.
이런 언어질서 붕괴의 일차적 책임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만연한 불신풍조에서 기인되었고, 2차적인 책임은 일부 방송사 편성권자의 시청취율 경쟁으로 야기된 언어의 무방비를 초래한 무책임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최종 책임은 사회감시 기능을 갖고 있는 활자 미디어와 국어학자와 사회학자들에게 있다 하겠다.

      불신풍조, 시청취율경쟁, 감시기능의 무감각 이 언어 파괴의 3대 공적

정치에는 소신과 신의보다는 정상배만이 득세의 기회를 노리며 철새와 사꾸라 정객들이 더 돋보이는 세상이라는 개탄의 소리가 높은지 오래다.
방송은 편성권자들이 전문성과 책임성을 멀리 한 채 저마다 얄팍한 시청취율에 매달리다 보니 청소년들의 아우성만을 동원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고작이다. 단 한 차례 방송되는 쑈나 드라마 제작에 수억 원 씩을 쏟아 부으면서도 절대다수의 국민들의 정서를 외면한 채, 시대에 뒤떨어진 전근대적 저질 프로그래밍에 맴돌고 있는 실정이다. 언론학자는 있어도 어용의 목소리만 조율할 뿐, 방송의 근대화의 길은 멀고, 새 방송법은 허공만을 맴돌며 특정 계층의 이권 만들어주기 학설만을 남발하고 있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활자 미디어 들은 저마다 잡다한 정크 기사들로 가득 메워 광고유치에만 더 힘을 쏟고 있는 실정이다.
정통한 소식을 빌면 서울에서인 경우 단 2개의 일간신문사만이 현상 유지이고 나머지는 모두 큰 빚에 가리워있다고 한다. 현재 서울에서 발간되는 각종 일간 신문들을 보면, 중앙 종합신문이 10, 경제 신문이 4, 스포츠 신문이 3에다 전자신문 등 전문지가 2개지 등 매일같이 19종의 신문들이 가판대에 어지럽게 깔리고 있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신문들이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나라는 그리 흔치 않다.
출판물의 홍수를 이룬다는 일본도 중앙 종합신문이 고작 4개지 내외이다.
미국의 세계적인 대도시 뉴욕이나 로스앤젤러스에서는 종합 일간신문이 각각 1개씩 밖에 없는 것을 보면 한국의 신문 경쟁은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하다. 그나마 어느 신문을 뒤적여 보아도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고, 문화의 강조나 국민 언어정화는안중에도 없고, 한결같이 정치꾼들의 낙수꺼리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들 있으니 결국은 종이와 경제의 낭비라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뉴욕과 L.A. 에는 종합일간지가 1 개씩 있을뿐인데

방송만 해도 텔레비전이 5채널, 레이디오 밴드는 AM5, FM8 등 11개 스테이션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공영방송, 민간상업, 종교, 교통방송이라는 구분만 있을 뿐, 스테이션의 특성은 없이 모두가 종합편성 주의로 천편일률의 프로그램 남발로 저마다 말 많이 늘어놓기 경쟁으로 온통 하루 종일 귀가 멍멍해진다. 그야말로 전파낭비의 극치를 치닫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이렇듯 방송이나 신문 등의 매스 미디어에서 언어의 유희가 난무하는데도 언어학자들은 꿀먹은 벙어리다. 사회학자들마저도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가히 언어의 무방비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혼돈기 임을 실감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는 정가의 일각에서는 ‘신지식인’이라는 조어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돌고 있다. 여기에 고학력 우위의 시대를 차단한다는 뉴앙스까지 풍기는 표현도 덧붙이고 있어서 얼핏 들으면 학력 경시 풍조의 의도가 깔려있지나 않나 하는 우려를 강하게 받게 한다.
시대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지식과 학식의 진리는 변함이 없고 여기에 신지식이나 신학식으로 미봉되는 왜곡이란 있을 수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혹, 학력 콤플렉스에 집착한 일부의 위정자들에 의한 언어의 게임이라면 더더욱 말려야 할 말장난이 아닐 수 없다.
과거 군사정권 조기에 학력 콤플렉스의 한 표상으로 고등학교 평준화를 강요하여 이른바 명문고등학교를 말살했던 기억이 새롭다. 또 이번에는 명문대학교를 말살하려는 술책은 아닌가 하는 노파심도 있다.
이른바 일류대학으로 손꼽는 서울대학이나 고려대학, 연세대학 등을 졸업하였거나, 그렇지 않고 정치대학이나 국학대학을 나오면 어떻단 말인가. 저만 똑똑하면 얼마든지 득세하는 세상이다. 오랜 역사와 깊이 있는 학문으로 쌓아올린 명문은 아무도 허물 수 없는 단단한 공든 탑이 아니던가. 이를 애써 부정 하려는 듯 한 작태는 아무리 양보하려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음모로 보여 지기 쉽다.

참 지식은 정신적인 수양을 바탕으로 이룩된 정신훈련


한자 표현에서 빌어 온 ‘지식인’은 인테리겐챠를 말한다. 철학적 의미로는 인식에 의해 얻어진 성과이고 사물에 관한 개개의 단편적이며 경험적 인식으로 정의된다.
원리적이고 통일적으로는 조직되어 객관적 타당성을 요구할 수 있는 판단의 체계를 뜻하고 있다. 지식인이 꼭 화잇 컬러 여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렇다고 특정 단순 노동자가 그의 일에 집착과 슬기가 있다해서 이를 ‘신지식인’이라 이름 붙이자고 우기면 아무래도 한토막 ‘개그’로나 받아들여질 노릇이다. ‘
학식’은 배워 얻은 지식과 학문과 식견을 뜻하는 것이니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단편적인 힘으로는 얻지 못하는 것이다.
지식은 몸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의식의 보편성을 전제한다. 학식은 명예박사같이 형식적인 인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갈고 닦은 정신적인 수양을 바탕으로 이룩된 정신훈련을 말한다 하겠다.
‘신지식인’이라는 신조어는 아무래도 신파같은 우스꽝 스러운 깜짝 유행어로 끝날것임이 자명할듯 하다. <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