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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제일주의 라야 산다
  2005년07월23일 02:27
     
 

  이 ‘최동욱 칼럼’은 필자가 미국에 머물고 있던 시절 가운데 1998년부터
2002년 사이에 로스 앤젤러스에서 발행되고 있는 시사뉴스 주간신문인
“코리아나 뉴스” 의 주필로 있으면서 매주 게재하던 고정 칼럼의 일부입니다.


최동욱 컬럼   ( 1998년 9월 10일 )
      

문화제일주의라야 산다

문화(文化)는 중국의 한자에서 빌어 온 2글자 술어로 중국 표현으로 [웬후아]라 쓴다. 중국의 고전
'설원'을 보면 '무력과 형벌 등의 권력을 쓰지 않고, 학문과 교육을 통해 백성들을
이끈다는 말'이라고 했다.
우리 국어사전에서는 권력 보다는 문덕 으로 백성을 가르쳐 이끈다고 했고, 철학적인
의미로는 인류가 모든 시대를 통하여 학습에 의해 이루어 놓은 정신적, 물질적인
일체의 성과라 했다. 의식주를 비롯해서 학문, 예술 도덕 종교 기술 등 물질과 정신
양쪽에 걸쳐, 생활 약식에 미치는 내용을 포함 하고 있다.
여기서 눈을 번뜩 뜨이게 하는 대목이 문화란 '권력 보다는 학문의 덕으로 백성을
가르쳐 이끄는 것'이라는 풀이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문덕을 숭상하고 예와 전통을 중히 여기는 민족으로 이어 왔다.
그런 선한 민족에게 일제의 무단정치로 30여 성상을 짓밟히는 동안에, 문화는
오도되고, 다른 나라의 문화에 이끌려 신음해야 했다. 독립된 나라가 된 뒤에도 군벌
독재에 의한 30 년 동안의 군사문화 속에서 또 다시 숨을 죽여야 했다. 굉음이 쩡쩡한 구령과 군화의 소음 속에서 한민족은 나라 안팎에서 군사독재에 대항하는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불길을 질러야 했다.
그리고 문민이란 이름으로 민간 정부가 세워졌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세상을 살아왔다. 본래 문민이란 2자 숙어는 우리말에는 없는 일본제 한자 표현에서 본뜬 것이다.
일본 헌법 제 66조에서 문민이란 직업군인이 아닌 순수민간인 이라 정의하면서 내각
총리대신은 문민이 아니면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즉, 문민이란 일본제 한자로
민간인이란 뜻이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가벼운 유행에 민감한 획일적 습성과, 경박한 모방성을 배제하고,
‘남이 그렇게 해도 나는 이대로가 좋다’ 라는 개성의식이 강하게 바탕 되는 사회를
필요로 한다.
차츰 퇴락하고 경박하게 변질되어 가고 있는 언어문화를 대하면서 아름답고 숭고한
옛 선비들의 지조 높던 일화들이 새삼 흠모 스러워 지는 시대에 살고 잇다.
하지도 못할 일을 말로만 자신으로 앞세우고, 무슨 일만 생기면 국민 핑계로 제
앞가림만 급급히는 정치꾼들의 작태를 보는 눈은 이제 싸늘해 가기만 하다. 도둑이
제발 저린 법인데, 누가 누구에게 칼을 들이대며 일시 모면의 책동을 꾀하는 것일까.

이 모두가 문화를 숭상하지 않고, 일시의 영화만을 즐기려는 찰나주의 졸부들의 정치 놀음은 아니던가. 뜻을 같이 하는 동지라면 누가 앞을 선들 어떠하며, 누가 뒤에선들 그 어떠하단 말인가, 문제는 뜻을 모아 큰 힘이 되면 그 것이 모두의 것이 되고,
영광은 그 다음에 찾아온다는 결속의 기본 요건조차도 이루지 못한 채, 먹이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철새 같은 정객들의 뒷모습을 보는 마음은 측은하기조차 하다.

오늘 우리를 비쳐보는 거울에는 온통 속임과 술수, 성급함과 비정상이 얼룩져
일그러진 모습으로 자주 보이는 것을 무엇으로 치유해야 할까,
능력과 전문성 보다 요령과 새치기가 더 상식화 된 세상에서는 반드시 뇌물이
필수적이기 마련이다.
초등학교에서 대학 입학을 위한 과외수업에 이르기까지, 동사무소의 말단 공무원에서 중앙관서의 결재권자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 하나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구조가
되어있던가.
대중음악이 일부 청소년들을 주대상으로 흐르는 근본 원인이 일부 제작자와
방송관리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음성적이고 큰 거래의 소산인데도 왜 그냥 내버려두는 것인가.
날이 갈수록 변질되어 가는 폭력성 언어와, 도덕성을 잃은 인관간계를 오락으로만 떠 넘기는 드라마의 제작 태도는 왜 그대로 용인되는 것일까.
세상이 비뚤어 저 가고, 편견과 힘이 헛되이 쓰여 지고 있는 데도, 언론매체
(미디어)들은 이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능력과 책무를 왜 마다하고 있는 것일까.
이 모든 요건들은 바로 문화를 외면한 말초적이고 현실 향락적인 경향에서 그 이유를 쉽게 찾아보려 한다. 오늘의 세상을 성서의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하는 교훈을 결코 흘려듣지 말자.

우리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바로 문화의 재정립이고, 정통문화의 올바른 인식과
계승에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독학이 자칫 독선과 아집으로 흐르기 쉬운 오류를 범하는 예를, 우리는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문화에 대한 조예와 참 문화에 대한 훈련의 기회가 결려
된데서 그 까닭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개혁과 구조개선이 강요되는 시대를 맞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문화의 참스런 바탕 위에 문화 입국으로 튼튼한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다.
문화에는 생활이 편리하고, 마음이 풍요로운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옛것을 숭상하는 전통이 있어야 하고, 그 전통은 승화되어 오늘 에 사는 슬기와 지혜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나라 밖의 다른 선한 문화와 서로 융화하면서 제 것으로 다듬어 나간다면 반드시 내일의 찬란한 꽃으로 피어오를 것이다.
오늘 우리가 올바로 사는 길은 무엇보다 문화제일주의 라야 한다.  <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