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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공많은 방송정책
  2005년07월20일 22:33
     
 



이 ‘최동욱 칼럼’은 필자가 미국에 머물고 있던 시절 가운데 1998년부터
2002년 사이에 로스 앤젤러스에서 발행되고 있는 시사뉴스 주간신문인
“코리아나 뉴스” 의 주필로 있으면서 매주 게재하던 고정 칼럼의 일부입니다.


최동욱 컬럼   ( 1999년 4월 26일 )
      

사공많은 방송정책

오늘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사회적 정보활동 뿐 만 아니라 개개인의 생활의 다양한 분야에까지 절대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에서도 그 산업적 경합은 치열하고, 그에 따른 정책도 선명하고 엄격하기로 소문 나 있다.
1980년 이후에 미국의 미디어 정책은 3개의 큰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그 첫째는 1984년의 AT & T의 분할이고, 둘째가 1984년에 케이블 텔레비젼에 관련된 법제도의 확립이다. 그리고 셋째는 1996년에 시행한 통신법의 대대적 개정 이였다.
이 가운데서 통신법의 개정은 96년 2월에 미국 의회가 4년이라는 검토와 논의를 거쳐 타협점을 본 것이다.
이 개정은 방송이 통신과의 협조와 규제완화를 강조한 것으로 그 기본정신은 미디어 정책이 경쟁주의의 전면적인 도입에 있었다.
미국은 1934년에 통신법 (Communication Act Of 1934)에 의해 통신과 방송이 규제를 받아 왔다.
이 통신법은 공공의 이익과 편의 와 필요성을 실현하기 위한 관점에서 공적규제권한을 연방통신위원회 (FCC)라는 독립행정위원회에 부여하고 있다.
FCC는 연방의회로부터 부여받은 규제권한을 행사하여 각 주의 여러 통신, 방송 케이블TV에 관하여 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를 두고 미국 미디어 정책의 효시로 보는 측면도 있다.
1996에 개정된 통신법의 기본정신은 " 방송규제의 완화"와 "로컬리즘"에 있었다.
FCC는 1983년에 이미 "로컬리즘" 원칙을 지지하는 움직임을 보여 왔었다.
고도정보사회에 사는 오늘, 정보통신기술의 고도화가 개개인의 생활에 다양한 영향을 주면서 세률러폰 (이동전화) 에 의한 전화의 이용법이 위성에 따른 새로운 전송 길이 트이게 되고, 여기에 따른 규제안화와 프로그램의 개발이 요구되었다. 로컬리즘은 특정 방송시장에 참여사업자의 수를 제한하면서 방송시장을 지역 분배를 통한 공공의 고른 이익을 충족하도록 한 것이다.
사실상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방송규제의 역할은 끝났고, 그 대신 시장에 따른 경쟁이 "로컬리즘 원칙"을 유지가능성으로 시장형성을 점쳤다. 이것은 규제완화 대신 로컬리즘의 확립에서 오는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려는 미국방송정책의 물고를 한 눈으로 읽을 수 있는 요건 이였다.
로컬리즘은 자율적 규제와 공공성이 절대 전제되는 양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작금 한국정부에서는 이른바 "대언론조직"의 틀이 잡혀 관심을 모으게 하고
있다. 4월중에 새 방송법 제정안이 상정되어 "통합방송위원회"가 생겨날 것 같다
.우리는 이 "통합방송위원회"의 설립에 대하여 2가지 관점에서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 그 하나는 미국의 FCC를 표방한 독립적 행정기구를 목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신을 배제한 채 방송만을 수용한 점이 그 첫째이다.
둘째는 기능의 분산으로 어정쩡한 방송행정상의 통제를 강화하는 새로운 형태의 규제 장치를 위한 기구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통신과 방송을 분리하여 관장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데다 현대적 미디어의 특성을 도외시한 전근대적인 착상이란 비난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방송법의 제정이 구정권에서부터 여러 해 동안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어떤 시한을 놓고 필연적으로 통과 제정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졸속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더구나 통신이나 방송이 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하지만 그 설립과정이나 개정의 논의가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관여할 바 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른바 '통합방송위원회'라는 것이 그러한 비정상 경로의 강한 입김으로 급조되고 있는 듯 한 인상은 아무래도 사생아를 배출하려는 불행의 씨가 되지나 않을까 적이 우려가 된다.
또한 명칭에 있어서도 '통합‘이란 어휘를 쓴다면 이것은 통신과 방송을 포괄적으로 하는 것이어야 했다. 굳이 방송 한 분야만을 관장하는데 있어서 '통합방송...'은 권위주의를 지향하려는 일부 위정자의 표현상의 강세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법의 제정과 이상적인 방향은 적어도 10년 넘게 방송 실무를 통해 경륜을 쌓은 인사를 중심으로 하여 현실화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입법부는 정치적 배려 없는 진지한 토론을 거친 다음에 법제화하도록 해야만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결국은 깊이 있는 실무의 체험도 없이 학술적 이론만을 앞세운 일부 언론학자를 방패로 정치적 이익을 고려하는 방송법이고 통합방송위원회 설정이면 단호히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또 어정쩡한 방송 체험을 정치적 기회로 삼고 있는 일부 직업정치인들에 의한 "사공 많은 나룻배" 꼴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우리들의 강한 바램이다.    < 주필 >